불법대출, 성매매 소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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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 세컨드 기타 하프다운 튜닝한거 왜 건드렸어. 내가 직접 키 낮춰서 연주한다고 나 어제 공연에서 얼마나 틀렸는지 알아 몰라?"
"형이 록키 하프다운으로 연주하는 거 난 이제 처음 알았어요. 굿릴보이까지 원래 튜닝으로 쭉 갔었잖아. 튜닝 대신 해달래서 나 아는대로 해줬는데 형은 왜 나한테 화를 내요?"
"나 튜닝 지난달에 바꿨는데 그때까지 우리가 합주를 몇 번을 했니? 내가 기타 바꾸는 걸 한번이라도 못봤다고?"
"참나. 그런것까지 알아줘야 되냐고요."
내가 뭐 형 남친이라도 되는 줄 알아요? 뒤통수를 벅벅 긁던 산이 마지막으로 버럭 뱉은 문장에 성화는 입을 꾹 다문채 눈을 치떴다. 성화는 그대로 한 마디 말 없이 합주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제 잘못 없다고 생각하는 산도 기가 찬다는 숨만 허 뱉을 뿐 성화를 쫓아가지 않았다.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싸워온 세월만 자그마치 2년이었고, 지금까지 해온 만큼 앞으로도 계속되리라고 믿었다.
오늘 홍중은 그리 생각했던 제 안일함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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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드라이브가 걸린 앰프에서 묵직한 파열음과 함께 비틀린 불협화음이 웅웅 울렸다. 합주실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했다. 그 정적 속에서 산이 쓰레기 버리듯 제 기타 넥을 내던졌다.
"씨발. 이럴바에 때려치고 말지."
언제나 산과 성화의 싸움은 성화가 바락바락 성질을 내고, 산이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받아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전혀 달랐다. 전조도 없이 급발진으로 뚜껑이 열린 산은 그대로 제가 애지중지 끌어안고 있던 기타를 내리쳤다. 쇠질 좀 한 녀석 아니랄까봐 단번에 기타 넥이 부러졌다.
제 겉옷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산은 합주실을 박차고 나갔다. 휑 열려있는 문틀을 넘어 윤호가 뒤따라 나갔고 홍중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혀를 찼다. 웅성대는 분위기 속 성화는 조금 전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스스로 기타를 부순 산의 눈빛을 마주한 사람은 성화뿐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2년동안 밴드를 함께하면서 단 한번도 보여준 적 없던 산의 강렬한 표정은, 작별이라는 단 하나의 미래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낫섷] 너는 알 거 없어
w. 파토
그날 뒤로 산은 끊었던 담배를 다시 꼬나물었다. 잠깐 담배 한 대 태우고 올 때마다 냄새난다고 인상을 찌푸리던 합주실의 누구 때문에 끊었던 것이니, 더 이상 금연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뻐끔뻐끔 뿌연 연기를 뱉는 산이 핸드폰 화면을 켰다.
홍중이며 윤호, 심지어는 민기까지 연락이 와 알림창이 어지러웠지만 성화의 흔적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내가 그 지랄을 피워놓고. 뭘 기대하는 거냐. 자조한 산은 마저 담배를 빨아당겼다.
그러나 산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고, 산의 괜한 기대는 왜인지 충족되었다. 성화가 미안하다며 먼저 찾아온 것이다. 현관 인터폰 화면에 비친 그 얼굴을 본 순간부터 산은 뇌까지 얼어붙어 어떻게 반응해야할 지 몰라 덤벙댔다.
얼레벌레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주고, 성화를 태운 엘리베이터를 기다린 다음 적당히 그가 초인종을 누를 때 즈음에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몇 센치 남짓한 두께의 철문 뒤에서 박성화가 나타났다.
"...행님아."
"응, 산아. 잘 지냈어?"
합주실에 들렀다 오기라도 했는지 성화는 기타가방을 메고 있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모범생 아이마냥 가방끈을 양손에 꼭 쥔 야무진 자세로. 무거운 짐도 있는 손님 현관에 계속 세워둘 수 없어 산은 성화를 제 자취방에 들였다. 성화 몰래 한숨을 쉬려 했는데, 그건 들킨 것 같았다.
"내가 미안해."
"...아니, 형."
제 침실 마루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산은 유순한 눈을 반짝이는 성화와 제 사이에 놓여진 기타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반짝반짝 새삥 티를 철철 내는 기타는, 이전에 산이 사용했던 기타와 완전히 똑같은 모델이었다.
순간 눈이 돌아버려 다시는 음악 안하겠다고 냅다 몇백짜리 기타 부수는 놈도 미친놈이지만, 그게 제 탓인 것 같다며 새 기타 사주는 놈은 대체 얼마나 미친놈인걸까? 산은 티셔츠 한 장 걸친 제 등 뒤로 삐질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제 광기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산인데 성화를 헤아리기는 오죽할까.
"그렇게 큰 돈이 어딨다고. 이걸 통째로 사서 들어와요, 형은."
"앞으로 5년 생일선물까지 미리 챙겨준다면 괜찮아?"
"괜찮긴, 그것도 비싸!"
어이가 빠지다 못해 승천한 산이 또 제 버릇대로 벌떡 일어나며 목청을 높였다 성화의 눈치를 보며 합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 산을 올려다보는 성화가 푸슬푸슬 웃으며 눈꼬리를 휘었다.
"아, 알았어요 일단. 받을게요. 잘 쓸게요, 형."
"웅. 그리고 우리 앞으로도 안 싸우려고 노력해보자."
"네에... 성화형 근데,"
이렇게 큰 돈은 어디서 났어요? 산의 질문에 성화가 척 봐도 어색하게 상체를 우뚝 멈춰세웠다. 박성화 돈없는 일개 대학생인걸 꿰고 있는 산이 핵심을 짚자 변명을 생각해내는지 성화의 눈이 도록도록 굴러갔다.
"비상금! 비상금이 있었지. 하하."
"...그러기엔 형 돈없어서 부모님 생신선물도 몸으로 때웠댔잖아요."
"아 그건... 어..."
귓가를 긁적이는 성화가 이제는 눈알조차 굴리지 못하고 두뇌풀가동했다. 하지만 결국 더 쥐어짜낼 변명이 없는지, 종국에는 산을 향해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알 거 없어."
"에에?"
"나는 이, 이만 가볼게. 기타 잘 쓰고. 연습 열심히 해서 다음주에 합주실 나와."
"아 형. 잠깐만요! 잠깐만, 아!"
그렇게 쌩하니 성화는 산의 집을 떠나버렸다. 홀로 남겨진 산은 곰곰이 생각했다. 대체 어디서 돈을 끌어왔길래 저렇게까지 대답을 회피해?
그리고 이러한 산의 궁금증은 이내 집착이 되어 필사적으로 성화의 뒤를 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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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제 기타 하나 사주겠다고 제3금융업 놈들한테 소액대출 받은거까지는 어떻게 이해를 해보겠다. 그런데, 그런데!
멀쩡한 인간이 왜 변태 아재들한테 다리 벌리면서 바텀알바까지 뛰는건데.
산은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뛰기 직전이었다. 언뜻 보기엔 훈훈하고 평화로운 합주가 끝난 후, 성화를 미행한 결과 그가 배나온 50대 아저씨와 팔짱을 끼고서 모텔에 들어가는 꼴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번 돈이라면, 산은 제 기타를 한번 더 부술 의향이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제게 사준 기타 할부도 못 갚았을 성화를 위해 꾹꾹 참았다.
모텔 앞 길바닥에서 줄담배 피며 밤을 꼴딱 샌 산은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모텔 밖으로 나오는 성화를 붙잡을 수 있었다. 다짜고짜 다 봤고 다 알았다고. 도대체 왜 이러는거냐고 산은 마구 따졌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산의 예상범위 밖이었다.
"예전부터 종종 하던 거야. 내가 내 용돈벌이 어떻게 하는지는, 네 알 바 아니잖아."
"이게 지금 어떻게 나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상관하지 마. 죄책감 가질 것도 없으니까. 그리고 좀 웃긴다."
"뭐가요."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되냐고. 네가 뭐 내 남친이라도 되는 줄 알아?"
그런 것까지 알아줘야 되냐고요. 내가 뭐 형 남친이라도 되는 줄 알아요?
"..."
확실하게 잡아채이는 기시감에 산은 부릅뜬 눈의 속눈썹만 파르르 떨 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문 막혀 병신같이 남겨지고 싶지 않았다. 제 손아귀 속에서 슬슬 빠져나가려는 성화의 손목을 더 세게 그러쥔 산이 버럭 말했다.
"까짓거 되지 뭐. 남친!"
"뭐어?"
"내가 형 남친 하고 쫌 참견 하께! 그러면 되는 거 아냐!"
"뭐라는거야 진짜!"
산에게 지지않고 목소리를 높인 성화가 산을 뿌리치려고 팔을 비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금 시커먼 사내새끼 둘이서 길바닥 한 가운데 서가지고 뭐하는거냐고. 수치심을 아는 성화는 슬슬 얼굴이 화끈대고 있었다. 그래서 가볍게 산의 뺨을 챱챱 두들기듯 때려주고서 연습 일정이 잡혀있지 않아 텅 빈 합주실로 그녀석을 끌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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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게 둘이 사귀게 된 경위라고?"
"웅."
"넵."
홍중은 지끈 머리가 아파왔다. 이놈들이 공연중에 갑자기 마주보고 서서 키스를 갈기길래 드디어 미쳤나 혹은 나 몰래 약이라도 빨고 무대 올라왔나 했더니, 진즉 사귀는 사이였단다. 그래서 기타 솔로구간에서 그만 너무 흥분한 나머지 키스한거다 어쩌구.
얘네보다 힘이라도 셌으면 머리 한 대 쥐어박았다. 다만 현실의 홍중은 냠냠살 가득 문 다람쥐 입술만 내민 채 뚱하니 있다가 알겠다며 산과 성화를 내보냈다. 어휴우. 돌겠어 증말. 홍중은 제 악보를 얼굴 위에 덮고서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