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섷&홍섷

오해

by. 치

“형. 이건 아니지”


“형”


“대답을 해봐 좀”


산이의 소리는 합주실의 방음벽을 타고 진동없이 성화의 귓가에 때려 박혔다. 공연 때 항상 작은 공연장도 크게 채우던 목소리가 이제 성화의 귓가에 빈틈없이 채워졌다. 어떤 생각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리고 그 결정을 왜 지금에서야 자신이 알게 되었는지. 산이는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그제서야 모든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바를 뛰지 않고서는 연명하기 힘들었던 밴드가 왜 다시 일어서게 되었는지. 어째서 행복하다던 형의 얼굴이 매일 매번 그렇게 지쳐보였는지. 알바도 없이 저녁에 마음껏 잘 수 있다면서 연습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지. 모든 것들이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 


“행복하자며. 형”


“난 행복해”


“이게 행복해? 이게?”


“진짜로. 괜찮아 산아”


성화는 정말 행복했다. 저녁에 그 사람을 만나야 했을 때도, 연습에 늦을 것 같아 연습실에서 잠을 청했을 때도, 밴드가 일어설 수 있음에 행복했다. 알바가 없어도 먹고 살 수 있다며 웃던 산이의 미소로 행복했다. 정말 산이의 미소 하나로 정말 행복했다. 드디어 형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냥 밴드에 도움이 된다는 것, 동생들의 웃는 모습을 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성화는 행복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밴드에 후원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밴드라는 것에 희망을 보았다. 후원이라는 것이 절대 좋은 뜻으로만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걸 모르진 않았기 때문에 기분이 오락가락한 것은 사실이다. 과연 이런 일을 다른 밴드 친구들과의 상의 없이 해도 되는 것인가에 대해 한참을 고민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후원자의 이름을 들었을 때는 마음 깊숙이 이 사실을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김홍중’

세 글자에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초기에 홍중을 프론트 맨으로 앞세워 밴드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밴드 ‘YOUTH’는 홍중에 맞춰서 시작했다. YOUTH의 시작은 홍중의 작은 문자였다. 


‘우리 밴드할래……?’


홍중은 그렇게 문자를 돌렸다. 그 멤버들 중에서는 성화와 산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생각없이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였고, 멤버들 모두 꿈에 가득 차올라 같이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 자체에서 행복을 느꼈기 때문에 홍중의 제안은 정말이지 꿈과 같았다. 허락했다. 하겠다고. 어린 날의 치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선택하지 않아 후회하는 삶은 싫다고 다들 그렇게 말했다. 

꿈과 희망에 가득한 밴드의 시작은 너무 좋았다. 프론트 맨에 홍중, 베이스에 성화, 건반에 산, 기타에 민기 그리고 홍중의 친한 형이 드럼을 맡았었다. 길거리 버스킹을 하면 길거리를 가득 매웠고, 여기저기 대학 축제도 다녔다. 그들의 성공은 너무나도 쉬웠다. 얼굴에 노래에 실력이 가득한 밴드는 그렇게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가는 길은 언제나 환호와 꽃이 가득했고, 행복만이 함께 했다. 

희망찬 청춘들에게 성공에는 그림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다. 그림자가 드리울 때에는 청춘들에게 희망도 성공도 꿈도 앗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다. 그림자는 서서히 오지만 알아차릴 때쯤엔 너무나 어두워 빛을 잃어버린다. 처음은 드럼의 부재였다.


“이제 나도 공부하고..취업해야지”

“형. 그래도…”

“야. 니들도 밴드 그거 한때야 그만하고 일해 일”


선배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막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드럼의 부재가 시작되었고, 곧이어 홍중도 포기 선언을 외쳤다.

“나도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아. 시작은 내가 했는데… 나도 아쉽다.”

홍중이 답지 않다고 성화는 한참을 생각했다. 홍중이라면 하고 싶은 건 끝까지 얻어냈을 것이다.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고? 홍중이에게 큰 물음표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야. 너가 이렇게 나가면 우린 어쩌라고.”

“성화야 너 있잖아. 너가 잘하면 되지. 너 잘하잖아”

“이렇게 끝날 밴드였으면 나 안했어. 안했을꺼야. 너 믿고 들어왔어”

“응. 알아. 미안하다고 하잖아.”

“….정말 그게 끝이야?”

“……어…”

홍중은 그날 이후로 없는 전화번호가 되어 3년을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성화의 첫사랑도 끝맺음을 당했다는 건. 홍중은 끝까지 모를 일이었다. 정말. 끝까지. 성화 혼자 힘들게 그를 잊었을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그냥 어느정도 좋아한다는 것만 알았지. 성화가 홍중이를 정말 사랑해서 밴드를 들어갔는 줄은. 홍중이가 그의 꿈의 척도가 되었을 것이라고는 당사자에게 평생 말못할 비밀이 되어버렸다. 

홍중이 나간 뒤에 그들은 잠정적인 휴식에 들어갔다. 마냥 쉴 수는 없어서 새로운 멤버를 구해도 보고 같이 연습도 했지만 그 때만큼의 파급력을 불러오지 못했고, 점점 재정적인 이슈가 따라붙었다. 돈. 그래 그 돈이 문제였다. 들어오는 돈이 없어지는 순간 이 밴드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성화는 손톱을 물었다. 언젠가 홍중이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과 홍중이에게 너의 밴드가 잘 살아있다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고작 돈이라는 것 때문에 막힐 것 같아 불안했다. 

불안함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난다고 그런 성화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눈 속에도 불안함이 같이 꽃피웠다.

언제나 전전긍긍하며 말라가는 형을 보아하니 정말 산이도 힘들었다. 성화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다. 처음엔 음악이 좋아서 같이 하는 형들이 좋아서 밴드에 들어왔는데 어느 순간 누군가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베이스를 드는 모습이 멋있었고, 홍중이 형이 나가고 나서도 어떻게든지 그림자를 걷어내려는 형이 멋있었다. 어른이었다. 산이의 눈에는 이미 성화는 어른이었다. 연습실에서 새벽 알바를 끝내고 돌아와 자는 성화를 가만히 바라보다

‘좋..아 해요…’

‘사…랑…해요’

속삭이다 잠든 척한 적도 많았다. 자신을 한없이 귀여워해주는 형이 미울 때도 있었지만 형의 기댈 나무가 되어주고 싶기도 했다. 혼자서 힘들어 하지 않아도 된다고 꼭 말해주고 싶었다. 그냥 같이 손잡고 가자고. 나도 형을 매우 좋아한다고. 

산이가 반했던 성화의 빛나는 눈은 어느 순간 찬란함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오로지 산이만이 눈치챌 수 있었다. 빛나던 찬란함이 사라진 그 순간부터 이상하게 밴드는 잘 나갔다. 끊겼던 축제 전화가 줄줄이 이어 나왔고 밴드세션으로도 불렸고 다시 천천히 희망의 소식이 들려왔다. 좋아해야 할 소식들이 줄을 지어 나타날 때 산이는 어딘가 마음이 좋지 않았다. 형이 이상했다. 달랐다. 

그런 성화를 불안하게 바라보며 원인을 찾으러 백발 돌아다닌 산이었다. 성화 몰래. 그리고 오늘. 잠이든 성화의 핸드폰에 반짝 빛나던 한마디의 카톡을 보게 되었다.


‘오늘 밤 8시 - 00호텔 로비’ – 김홍중


이상했다. 홍중이 형이?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도래했고, 몰래 볼 수는 없던 산이는 결국 성화를 깨웠다. 일어나보라고. 이 문자는 뭐고. 홍중이형은 뭐냐고 당장 설명을 들어야만 할거 같았다. 그리고 일어난 성화의 발언은 앞의 상황을 만들었다.


“우리. 잘 되는거. 다 홍중이 덕이야”


모르지 않았거든.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거든. 처음엔 홍중이 형에게 화가 났다. 형이 만든 밴든데 지금 이렇게 됐다고? 두번째로는 홍중이 형에게 화가 났다. 성화가 홍중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저 밝히지 않았던 것이지. 그 사랑을 이렇게 이용하고 있었다고…? 라는 두가지의 분노가 산이의 몸에 가득했다. 무시할 수 없었다. 


“홍중이랑 그냥 만나는거야. 홍중이도 알아.”

“밴드 잘 되는거 다 홍중이 형 때문이라며”

“어.”

“근데 어떻게 그냥 만나는거야?”

“진짜 그냥 만나는 거야”

“어떻게 그냥 만나는 게 되는 거야?”

“그럼…. 어떻게 만나야 하는데?”

산은 머리를 흩트렸다. 형의 찬란한 눈동자를 다시 못 보게 된 것이 홍중이의 잘못 같아 보였다. 그게 너무 싫었다. 

“그만 만나.”

“누굴”

“홍중이형”

“왜”

“…………알잖아”

“뭘 알아. 말 해줘야 알지”

“홍중이 형 때문에 우리 밴드 잘나간다며. 형이 홍중이 형 만나면서 그렇게 된 거 아냐?”

“맞아”

“홍중이 형 소문에 잘나가는 기업 아들이라며”

“어. 그렇다더라. 잘나가더라.”

“그 형 돈 얼마나 받기로 한거야?”

“무슨 소리야 산아”

“형 눈이 달라졌어. 자꾸 찬란한 눈이 없어. 난 형 그런 눈 좋아했는데. 형이 없어졌어”

“….”

“근데 형이 홍중이형 만나면서 그렇게 된 거 같아서 난 꼭 왜 만나는지. 왜 우리 밴드가 갑자기 잘되는지 이유를 들어야겠거든?”

“…..”

“형이 입다물면 내가 오늘 그 자리에 나갈꺼야”

산이는 작정했다. 성화에게서 어떠한 말도 안 나오면 직접 가서 듣겠다고.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흔드는 장난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산이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를 선택하라고 꼭 말하고 싶었다. 

“나갈 필요 없을걸?”


오랜만에 듣는 낯선 소리가 연습실을 울렸다. 홍중이었다. 성화에게서 산이가 이상한 의심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날라왔더랬다. 


“산이 많이 어른이 됐네. 성화 걱정도 하고. 나도 많이 미워하고. 연습실 여기 방음이 진짜 안된다 성화야”


홍중이의 특유의 위트는 아직도 사람의 심장을 간질였다. 프론트 맨의 등장이었으니까. 산이는 아무일 없는 자신의 가슴을 매만졌다. 심장이 간지러워서.


“근데 산아. 다 들었는데. 두 가지 잘못 알고 있는게 있어”

“….뭔데요…”


다시 온순해진 모습에 두 형들이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홍중이도 성화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귀여웠거든.


“한가지는 나 성화랑 안 잤어..!”

“야!!!!!!!”


이번엔 더블 킬이었다. 성화도 산이도 둘 다 얼굴이 벌게지면서 성화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산이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일까.


“그니까 뭐 스폰 어쩌고 그거 다 산아 너의 상상력 칭찬해.”

“……….그냥 말하면 안됬던거야….?”

“성화야 넌 조용히 해봐”

“응…”

“그리고 두번째는 성화 나 안 좋아해. 이제. 아 그리고 밴드. 이거 나도 다시 할 꺼야. 그거 때문이었는데 뭔 찬란한 눈동자 어쩌고...성화야 나 좀 봐 봐 너의 눈이 빛나는지 좀 보자”

홍중이의 눈과 성화의 눈이 마주쳤다. 산이의 눈엔 왠지 모르게 곧 뽀뽀라도 할 것 같은 커플의 모습으로 보였다. 쪽팔린 건 뒷전이었다. 성화 형이 홍중이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건 그렇다면…..


“어 너 좋아한대. 대뜸 나 보자마자 너 좋아한대. 나 밴드 다시 들어갈 때까지 있어줘서 고맙다고 하려고 불렀는데 너 좋아한대 너”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