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섷

I can't answer that

by. 야미

“그렇게 연습하다 병난다. 형도 얼른 퇴근해.”


 문이 열리는 소리에 시선을 주자 사복을 입은 산이 있었다. 모두가 퇴근하고 성화의 숨소리만 가득하던 연습실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상태 그대로 손만 휘적이자 산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그냥 가줬으면 좋겠는데. 산의 온기가 느껴지고 겨우 진정됐던 마음이 다시 울렁이며 물에 빠진 것만 같은 기분에 숨이 막혀왔다. 약해진 모습은 보이기 싫어 숨을 크게 내쉬었다. 샴푸 냄새와 함께 산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윽. 성화의 입에서 짓눌린 신음이 나오고 산이 씩씩거리며 성화의 배를 찰싹 때렸다. 아니이- 갑자기 올라오니까 그렇지이- 성화의 목소리가 힘없이 흩어졌다.


“가자!”

“어딜...?”


산은 웃으며 성화의 몸을 일으키기만 할 뿐, 성화의 물음에는 답이 없었다.


 산의 등쌀에 급하게 옷을 갈아입던 성화가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게 무색하게 기대하는 꼴이라니. 연습이 끝나고 산이 자주 가는 곳이라면 피시방이거나 밥집이겠지. 제 기분을 풀어주려는 동생이 기특하고 고마우면서도 답답한 기분이 해소되지 않아 한숨을 내쉬었다.



 성화의 예상과는 달리 산이 데려온 곳은 홍대의 한 공연장이었다. 홍대 메인 거리를 걷다 보면 지나칠 수밖에 없던 큰 건물. 산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좁은 공간을 채운 사람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여성들 사이에서 산을 놓칠 일도 없을 텐데 낯선 공간에서 혼자가 될까 두려웠던 성화는 산의 뒤를 졸졸 따라 티켓을 건네받고 엠디를 구경하고 있었다. 오, 이런 건 어디에 쓰는 거지- 궁금함에 이리저리 훑어보던 성화의 뒤로 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이다. 같이 오기로 했던 일행이 못 온대서 걱정했는데.”

“뭐야. 나 걱정해서 데려온 거 아니었어?”

“아니, 뭐. 겸사겸사.”


황당함에 바라보면 눈치를 보며 애교를 부리는 산이었다. 아니, 형님 우울해 보이는데 티켓은 남고 공연 보면 신나고 그러니까 데려온 거지-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 산이 귀여워 웃음을 짓자 다시 쫑알거리느라 바빠진 산이었다. 나도 처음에 친구 따라갔었는데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구- 친구랑 다니다 보니까 취향인 밴드도 생기고- 사실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밴드 기타리스트가 세션으로 참여하는 건데 혼자 가긴 부끄러워서- 산의 이야기를 들으며 주위를 다시 둘러보면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들떠있는 모습이 보였다.


“입장 시작합니다! 입장 번호 순서대로 입장하실게요~”


입장 번호... 53번... 순서대로 공연장에 입장하니 또 새로운 풍경에 눈만 굴리는 성화였다. 산을 따라 의아함을 가지며 객석 오른쪽으로 향했다. 여긴 너무 구석이잖아- 가운데가 제일 좋은 자리 아니야? 에이, 형님아. 뭘 모르는 소리. 원래 사이드가 더 잘 보여. 그리고 우리는 덩치가 커서 옆으로 빠져줘야돼. 산의 말뜻을 이해는 못 했지만, 그렇구나아-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형님아, 오늘 보고 괜찮으면 다음에 또 같이 가자. 성화는 산의 말을 대충 흘려들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를 가리고 있던 스크린이 올라가며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 어두웠던 무대가 밝아지고 드럼 소리가 쿵쿵 울려 퍼지며 객석에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뻘쭘하게 앉아있던 성화도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래를 부르던 보컬은 그런 성화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고 성화는 민망함에 눈을 피하다 온 힘을 다해 연주하는 드러머를 바라봤다. 드러머의 움직임과 함께 둥둥 울리는 북소리가 마치 심장 소리 같았다.

 한동안 자신을 옭아매던 족쇄가 사라진 듯한 기분과 각기 다른 악기로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세상 두려울 것 없이 뛰는 사람들. 비로소 숨이 트이기 시작했다. 기타 솔로에 맞춰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을 둘러보다 신난 얼굴을 한 산과 마주했다. 산이 소리를 지르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하면 산이 귓속말을 해왔다. 막 소리 질러! 어차피 안 들리잖아! 다시 들려오는 기타 소리에 산은 눈만 끔뻑이는 성화를 두고 고개를 돌렸다.

소리를 질러도 되는 걸까. 슬럼프에 빠진 이후로 춤을 추는 법을, 소리를 내는 법을 심지어 숨을 쉬는 법을 잃어버린 것 같았는데. 숨을 크게 들이쉰 성화가 소리를 내질렀다. 제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가슴을 꽉 막고 있던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형님 기분이 좀 풀렸나?”

“응?”

“그렇게 미소 짓는 거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서.”


요즘 제 표정이 그렇게 어두웠나. 공연장을 벗어나자 먹먹해진 귀는 세상의 소음을 차단해 주었고 답답했던 속은 시원해졌기에 고개만 주억거렸다.




 산을 따라 공연을 보고 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늘 그래왔듯 출근하고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다 자괴감에 빠지기 일쑤였다. 평생을 신어 온 미투리는 족쇄처럼 느껴지면서 숨이 막혀왔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기만 바라던 성화는 답지 않게 연습실을 제일 먼저 벗어났다. 저녁 약속이 있다며 둘러대자 뒤따라오던 산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성화를 보내주었다.


 연습실을 벗어난 성화는 건물 앞에 멍하니 서있었다. 오렌지색 하늘이 낯설어 가야 할 곳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하늘만 바라보며 정처 없이 걷던 성화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건물 앞에서 멈췄다. 한 달 전, 산을 따라갔던 공연장이었다. 활기찬 사람들을 지나치며 그날을 떠올려본다. 제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던 드럼 소리를 생각하며 걷다 보니 심장이 둥둥 울리는 것 같았다. 아니, 심장을 울리는 드럼 소리가 들렸다.

드럼 소리를 따라가자 허름해 보이는 클럽 입구가 보였다. 입구엔 작은 입간판으로 타임 테이블이 적혀있었다. 여러 밴드의 이름 사이에서 한 밴드의 이름이 성화의 눈에 들어왔다. ‘8:45|체리코크 앤 메론소다’ 풉, 무슨 밴드 이름이 저래. 그저 밴드 이름이 마음에 들어 체리코크 앤 메론소다의 공연이 보고 싶어졌지만, 붉은 조명이 켜진 클럽에 들어가도 될지 망설여져 입간판에 쓰인 체리코크 앤 메론소다의 이름만 바라봤다. 그런 성화를 지나친 여성들은 입간판 사진을 찍으며 대화를 나눴다.


“헐, 오늘 쳌메 나오네?”

“얘네 프론트 이제 괜찮나? 다쳐서 쉰다는 거 아니었어?”

“아, 오늘 안에 빡세겠다.”


익숙하게 클럽 안으로 들어가는 여성들을 보며 용기를 얻은 듯, 성화도 결연한 표정으로 클럽 안으로 향했다.


“계좌로 입금해 주시고, 보러 오신 밴드 있으세요?”

“어... 체리코크 앤,,, 메론소다...?요...”


기계처럼 입금 내역을 확인하며 성화의 손등에 도장을 찍어준 직원은 멀뚱히 서있는 성화를 의아하게 보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직원의 목소리에 눈치만 보던 성화는 그제야 클럽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어두워지는 공간은 사람들의 열기가 가득했다. 터질듯한 음악에 맞춰 빛나는 조명이 결계라도 되는 듯 성화는 더 이상 내려가지 못했다.

그렇게 구경하기를 한참, 뒤에서 조심스럽게 성화의 어깨를 쳐왔다. 아,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며 성화는 몸을 구겨 벽으로 붙었다. 이 정도면 지나갈 수 있겠지, 생각한 것이 무색하게 남자는 성화의 뒤에 그대로 서있었다. 의아함에 돌아보자 남자는 성화를 빤히 바라보기만 하다 경계심 가득한 눈빛에 웃음을 터뜨린 남자는 성화에게 귓속말을 했다. ‘왜 안 들어가요?’ 당황한 성화는 남자를 훑어보다 눈이 마주치자 급하게 시선을 피했다. ‘안에 들어가서 보면 더 재밌을 텐데.’ 다시 한번 성화의 귀에 속삭인 남자는 싱긋 웃으며 성화를 지나쳐 내려갔다.

성화는 홀린 듯 남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열기 속엔 땀 냄새와 술 냄새가 섞여 있었고 끈적한 바닥은 성화의 걸음마다 쩍- 쩍- 불쾌한 소리를 냈다. 평소라면 기겁하고 되돌아갔을 성화가 남자만을 바라보며 무대 근처에 자리했다. 성화를 바라보며 무대 위로 올라간 남자는 의아하게 바라보는 성화의 시선을 느끼고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무대 위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가운데 한 손엔 깁스를, 다른 한 손에는 마이크를 쥔 남자는 장난기 가득한 멘트로 분위기를 풀었다. 아- 아- 여러분 저희 오랜만이죠- 우영아, 빨리빨리 하자- 팬분들 기다리신다- 남자의 말에 기타를 들고 바쁘게 움직이던 남자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와아- 이 형, 자기는 다쳐서 기타도 못 들어가지고 저한테 다 떠넘겨놓고 또 저한테만 뭐라한다요? 불쌍한 표정을 한 우영이 귀엽다는 듯 여성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저희 그럼 사운드체크 해볼게요- 장난기는 쏙 빠지고 단호한 남자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악기들의 소리가 소란스럽게 공간을 채웠다.

바닥만 바라보며 가볍게 노래를 불러보던 남자는 악기를 연주하는 멤버들과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멤버들이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말하는 사이 남자는 성화를 보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잘 봐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무대를 가리고 있던 스크린이 올라갔고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연주가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체리코크 앤 메론소다입니다- 소리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남자에게서 빛이 났다. 깜찍한 팀 이름과 달리 강렬한 음악이 귀에 꽂히고 남자는 작은 무대를 누비며 관중을 압도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던 남자는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여러분, 저희 이제 마지막 곡이에요.”

“아니야!!!!! 가지 마!!!!”

“아, 저희가 따로 앵콜을 준비하진 않았는데. 뭐, 아쉬우시면... 아시죠?”


남자는 능글맞게 윙크하며 말하고는 노래를 시작했다. 행복한 미소로 무대를 즐기는 남자와 덩달아 신이 난 사람들 틈에서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눈을 질끈 감았다. 저 조명이 너무 눈부셨을 뿐이라고 합리화를 하며. 그렇게 눈을 깜빡이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환하게 웃는 남자의 얼굴에 제 어두운 감정이 씻겨 저도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지금까지 체리코크 앤 메론소다였습니다! 사람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스크린이 내려와 무대를 가렸다. 스크린으로 가려지지 않은 쪽에서 정리하는 남자를 보던 성화도 아쉽다-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뭐가 아쉬운 건지 알 수 없어서 팬들에게 인사하며 무대를 떠나는 남자만 바라봤다.


“야, 오랜만인데 쳌메 퇴길 하고 올까?”

“밀고 들어올 거 같아서 자리 지켜야 될 거 같은데.”

“그럼 교대로 갔다 오자. 금방 끝내고 올게.”


여성들의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남자를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아 여성을 따라갔다. 계단을 올라갈수록 먹먹해진 귀가 그날처럼 세상의 소음을 막아주며 답답했던 속은 시원해졌고 숨을 쉴수록 웃음이 났다. 클럽을 벗어난 여성은 클럽 옆 골목으로 향했고 골목에는 체리코크 앤 메론소다의 멤버들과 빠르게 따라온 팬들이 있었다. 남자의 앞에 줄을 선 팬들 뒤로 어영부영 줄을 서 사람들의 행동을 살폈다. 여성들이 꺄르르 웃으며 떠나고 남자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떨려와 한숨을 내쉬었다.


“오, 안녕하세요~ 어때요? 안에서 보니까 더 재밌죠.”

“어... 네...”

“공연 시작 전에는 표정이 어두웠는데 지금은 밝아 보여서 좋네요.”

“아, 그쵸... 즐거웠어요.”

“답답한 게 풀렸으면 다음에 또 와요. 스트레스 맘껏 풀게 해줄게요. 성화씨.”

“...네. 감사해요.”


사인을 받는 여성들을 따라 주머니를 뒤적여 나온 명함에 사인을 받았다. 한 손으로 불편해 보이면서도 남자는 능숙하게 사인을 하며 쭈뼛거리는 성화에게 말을 걸어왔다. 하고 싶은 말보다는 그저 남자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던지라 고개만 끄덕거렸다.


“성화씨, 제 이름은 안 궁금해요?”

“네?”

“저는 김홍중이에요.”

“아, 네. 홍중..씨.”

“한국무용 하시는 거 너무 멋져요. 저는 살면서 춤을 춰본 적이 없어가지고.”

“...한국무용이 뭐가 멋져요.”

“왜요. 춤 잘 추는 사람 멋지던데. 다음에 성화씨 춤도 보여주면 안 돼요?”

“어,,, 네. 기대는 하지 말구요...”


자신감을 잃고 표정이 어두워지는 성화에 홍중은 말을 돌렸다. 성화씨는 사진 안 찍어요? 제 폰으로 찍을까요? 제가 성화씨 얼굴 간직하고? 장난스럽게 말하며 성화의 휴대폰을 가져간 홍중이 성화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사진을 찍었다. 뻣뻣하게 굳어있는 성화를 웃게 하려는 홍중은 손으로 브이를 만들어 성화와 제 머리 사이에 올렸다. 이게 저희 팀 공식 포즈예요. 체리코크라서 체리피쓰- 설마 성화씨 체리피쓰 모르는 거 아니죠? 순간 멤버들과 팀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 떠올라 성화가 웃음을 터뜨리고 홍중은 타이밍 좋게 사진을 찍었다.


“성화씨, 집에 가서 놀라지 마요. 사진 진짜 잘 찍었으니까.”

“네에... 근데 그 팀 이름... 왜 체리코크 앤 메론소다예요?”

“그건 다음에 또 오면 얘기해 줄게요.”


약속- 홍중이 내민 새끼손가락에 성화도 새끼손가락을 걸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히 가고 저희 계정 팔로우하는 거 잊지 말구 다음에 또 와요-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홍중에게 꾸벅 90도 인사를 한 성화가 터덜터덜 역으로 향했다.


 집에는 어떻게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홍중만 생각하던 성화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들었다. 사진... 잘 찍었다고 했지... 가장 최근에 찍힌 사진을 살펴봤다. 스스로 보기에도 낯설 만큼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내가 이렇게도 웃을 수 있었나- 꺼진 휴대폰에 비춰 미소를 지어봐도 사진처럼 환9한 웃음이 아닌 썩소였다. 이게 혼자 뭐 하는 짓인지, 한숨을 내쉰 성화가 삭제했던 별그램을 다시 설치했다. 저만 빼고 모두 행복해 보여서 삭제한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갔다. 그런 와중에도 생각나는 아이디와 비밀번호에 또 한숨이 나왔다.

[체리코크... 앤.. 메]만 검색해도 나오는 계정을 팔로우하고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스토리를 봤다. 다른 팬들이 올린 스토리에 코멘트를 달아 리그램을 해주고 있었다. 영상을 다시 보며 즐거웠던 기분이 떠올라 자연스레 미소를 짓는 성화였다.




 쳇바퀴처럼 돌아온 한 주가 새로워졌다. 늘 답답했던 연습실에서도 문득 떠오르는 홍중의 얼굴이, 목소리가, 홍중이 들려주던 노랫소리가 떠올라 숨이 막히지 않았다. 것보다 오늘도 연습실을 벗어나면 홍중의 공연을 보러 갈 거라는 기대감에. 여느 때와는 달리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기대했다.

연습이 끝나자마자 달려간 클럽은 오픈 전부터 기다리던 팬들로 가득했고 기다리던 순서대로 입장하며 성화도 나름 익숙하게 지하로 내려갔다. 여전히 끈적한 바닥은 적응할 수 없었지만 아직은 쾌적한 공기에 숨을 크게 내쉬며 전과 비슷한 곳에 자리했다. 빠르게 다른 팀들의 공연이 이뤄지고 기다리던 체리코크 앤 메론소다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사람들의 환호성 사이로 성화는 홍중이 들고 있는 기타와 한층 가벼워진 손을 바라봤다. 홍중은 성화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눈을 도륵 굴리던 성화가 꾸벅 묵례를 하자 홍중이 기타를 튜닝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홍중에게서 빛이 났다. 아직은 다쳤던 손이 불편한지 손을 털며 주먹을 쥐었다 피면서도 연주를 포기하지 않았다. 제가 욕심냈는데 아직 손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네요- 엉망진창이어도 같이 즐겨주세요! 머쓱하게 웃으면서도 자신감 있게 말하는 홍중에 성화가 주먹을 쥐었다.

나는 언제부터 즐기지 못했지...?

추억과 미래에 대해 노래하는 홍중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행복한 미소를 짓는 홍중을 따라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어- 튜닝하는 동안 또 저희 소개를 해보자면, 저희가 왜 체리코크 앤 메론소다인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좀 있는데. 저희는 원래 체크메이트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었구요. 안 그래도 생긴 것부터 험악한데 이름이랑 노래도 험악한 것 같아서 좀 귀엽고 상큼하게 바꿔봤어요. 근데 또 안 어울린다고 말씀하시면서 저희 이름을 절대 안 까먹으시더라구요? 하하. 그래서 체리코크 앤 메론소다로 계속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 제가 말이 좀 길었죠? 그 험악했던 체크메이트 시절 노래로 다시 뛰어볼까요? 성화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를 듣자 미친 듯이 웃음이 났다.


체리코크 앤 메론소다의 무대도 순식간에 끝이 나고 성화는 홍중을 따라 클럽 밖으로 향했다. 홍중의 앞에 서자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만 떠올라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 보자마자 웃는 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아니히, 이유가 웃기잖아요.”

“우린 진지했는데!”


억울한 표정을 하는 홍중을 보며 웃던 성화가 비밀 얘기하듯 속삭였다. 근데 전 이름이 마음에 들었어요- 눈을 살짝 가리고 있던 볼캡을 벗은 홍중이 눈을 맞춰왔다.


“그쵸? 성화씨 마음에 들려고 이름 바꾼 거예요, 저희.”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진짠데? 성화씨가 이름 좋다면서요.”

“알겠어요... 그렇다고 해요. 근데 손은,,, 어쩌다 다친 거예요?”

“멋있어 보이게 연습하다 다쳤다고 하고 싶은데, 운동하다가 다쳤어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성화의 표정이 어두워져 홍중은 부러 더 밝게 이야기했다. 이제 하나도 안 아파요- 저 기타 치는 거 보셨죠? 어때요? 멋있죠- 기타 치던 홍중의 모습을 떠올린 성화가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 입으로 말하는 게 어딨어요. 제가 할 말인데.”

“뭐 어때요. 저 멋있어 보이려고 기타 배운 건데.”

“그렇구나아... 진짜 멋있었어요. 너무 빛나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홍중은 반짝이는 성화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다 느릿하게 말을 이어갔다. 성화씨 눈이 더 빛나요- 이렇게 좋아해 주셔서 뿌듯하네요. 얼른 손 다 나아서 더 멋있게 보여줄게요. 자신 있게 말하는 홍중을 보며 성화는 말을 고르듯 도르륵 눈을 굴리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제가, 기대해도 돼요...?”

“아, 당연하죠. 그럼 기대 안 하려고 했어요?”

“아뇨, 그건 아닌데... 제가 기대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까.”

“에이, 성화씨가 기대해 주면 더 열심히 하죠.”


성화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기대할게요- 홍중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젖어있는 머리칼을 정리했다. 사진 찍을까요? 머리가 엉망이긴 한데. 모자 쓰면 안 보일 거 같아서. 머리를 정리하는 홍중을 멍하니 보던 성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땀에 젖은 머리도 잘만 어울리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체리피쓰 안 까먹었죠?”

“풉, 그럼요.”

“어어? 비웃지 마요. 사진 이상하게 찍을 거예요.”


오늘도 성화의 갤러리에는 홍중과 환하게 웃고 있는 성화가 저장되었다. 한결같이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는 홍중에게 성화는 꾸벅 인사했다.


 성화는 침대에 누워 홍중과 찍은 사진을 보며 홍중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다른 사람의 기대가 부담스럽지 않는다는 게, 다른 사람에게 멋있어 보이면서 스스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언젠가 성화도 느꼈던 감정이었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홍중을 통해 잊고 있던 것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형, 요즘 연애해?”

“뭐?”

“요즘 표정이 좋아 보여서. 안 그러던 사람이 칼퇴하고.”

“아니, 연애는 무슨. 그냥... 스트레스가 좀 풀려서 그렇지, 뭐.”


아닌데에- 완전 연애 맞는데에- 산은 빠르게 연습실을 벗어나는 성화를 향해 소리쳤다. 연애는 무슨... 성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익숙하게 클럽으로 향했다.


 무대 옆에서 대기하던 홍중은 성화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해 왔다. 성화도 반갑게 인사하자 홍중은 주먹을 쥐었다 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홍중의 손짓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던 성화가 뒤늦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쳤던 손이 이제는 괜찮다는 것이 사실인 듯 홍중은 저번 공연보다 더 멋진 연주를 보여주었다.


 저 오늘 잘했죠- 성화를 마주한 홍중이 양 엄지를 치켜들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성화도 고개를 끄덕이며 양 엄지를 치켜들었다.


“진짜 짱이었어요. 너무 멋있어서 반할 뻔했잖아요.”

“어어? 반할 뻔? 반한 게 아니고요?”

“어... 반했다고 할게요.”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홍중에 성화가 소리내어 웃었다. 저 사람 꼬시려고 기타 배운 거예요- 홍중은 비밀이라는 듯 성화의 귓가에 속삭였다. 뭐예요- 저번에는 멋있어 보이려고 기타 배웠다면서요- 성화의 말에 놀란 표정을 한 홍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멋있으니까 다 저한테 반하잖아요- 고개만 끄덕이던 성화가 뜸 들이며 말했다.


“저도 기타 배워볼까 봐요.”

“성화씨도 더 멋있어지려고요?”

“네. 저도 멋있어지려구요.”

“저한테 배울래요?”


성화가 놀란 얼굴로 눈만 끔뻑이자 홍중이 멋쩍게 말을 덧붙였다. 아니, 뭐. 제가 기타를 엄청 잘 치는 건 아니지만, 기초부터 알려주는 건 할 수 있거든요. 그냥 해본 말이니까 그렇게 부담스럽게 생각하진 말구요... 자신감 가득했던 목소리가 점점 자신을 잃고 주절거렸다. 홍중이 주절거리는 말을 들으며 웃음을 터뜨린 성화가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그럼, 저 기타 좀 가르쳐주세요. 홍중쌤.”


산아- 연애, 까진 아닌 거 같은데, 그런 비슷한 건 맞는 거 같다.

성화는 산에게 닿지 않을 말을 떠올리며 홍중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